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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예배찬양콘티(251214)
작성자 김영백 작성일 25/12/10 (18:53) 조회수 84

금주(20251214)의 찬양콘티를 올립니다.  

    

저 들 밖에 한 밤중에(D major)  

온 세상이 캄캄하셔서(D major)  

세상 권세 멸하시려(D major)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D major)  

사도신경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G major)  

    

제가 한밭제일교회에 등록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35년 전 19901월 첫 주입니다. 그때 제 나이가 요즈음 만 나이로 말하면 30세일 때입니다. 교회에 등록하고 권찰 직분을 받았습니다. 그 전에 다른 교회에서 서리 집사를 직분을 받고 왔습니다만, 그 때 교회에 있던 동갑내기 부부들이 모두 권찰이라 저희 부부도 같이 권찰이라는 직분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때만 해도 우리 교회에서는 3년 권찰을 하고 나서 서리집사를 임명하던 때였습니다. 그러니 다른 교회에서 3년 이상 서리 집사로 섬기다 온 것이 아니면 권찰로 강등(?)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해 하반기에 주일학교를 유년부와 초등부로 분리하고 초등부 부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요즈음으로 생각해 보면 말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나이 서른에 권찰이 주일학교 한 부서의 부장이 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 때 주일학교에 있던 학생들 중에 이제는 같이 늙어 가고 있지만, 새롭게 공동체를 담당하는 최모 목사와 저와 함께 지금껏 찬양 반주로 섬기고 있는 최모 집사 등이 있었습니다.  

    

말이 안 되는 일이었지만 참 행복하고 감사한 사역이었습니다. 신혼살림에 당시 고등학생인 여동생과 함께 상가 2층에 방 두 칸짜리를 전세로 얻어 살고 있었지만, 매월 교사 월례회는 저희 집에서 했었습니다. 집사람이 이러저런 음식을 준비해서 교사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다음 달의 여러 행사 계획을 점검하고 검토하는 회의를 하곤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결혼한 지 2년 밖에 되지 않았던 새댁이 매월 20명가량의 식사를 준비하고 대접한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닌데, 어찌 그렇게 수월하게 해냈는지 정말 대견하고 대단하고 또한 감사합니다.  

    

그러다 그 다음해인가부터 예수쟁이의 단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때 오늘의 예수쟁이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때는 단장인 제가 찬양도 인도하고 특송도 같이 했었습니다. 왜 그랬는지 또래의 리더가 있었는데 단장이 찬양단 리더 같이 활동을 했었습니다. 저녁 찬양도 인도하고, 부흥회가 있으면 부흥회 찬양도 인도했었습니다. 어쩌자고 그런 일을 겁 없이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다가 1998년 관저동 교회로 옮겨 오면서 그 당시 부교역자들에게 저녁 예배 찬양을 인도하는 일을 넘기게 되었습니다. 도마동 교회 때는 부교역자들 중에서 찬양을 인도할 은사가 있는 분이 쉽지 않았지만, 관저동 교회로 옮기고 난 후에는 찬양의 은사가 있는 부교역자들이 있었기에, 아무리 생각해도 평신도인 제가 계속 찬양 인도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었습니다.  

    

2000년에 현 원내동 교회로 옮겨 왔서 2001년 11월 22일에 장로로 임직하고, 2005년 6월 5일부터 주일 낮예배의 예배찬양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도마동 교회에서 예수쟁이 찬양단 단장이라는 이름으로 예배찬양과 집회찬양을 인도했던 경험이 예배찬양의 밑거름이 된 것 같습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대전에 올라오기 전에 부산의 제 모교회인 괴정중앙교회에서 중등부 찬양대 지휘를 하고, 청년부에서 찬양으로 섬겼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국민하교 4학년부터 주일학교 성가대에서 찬양을 시작했고, 중고등부 성가대를 거처,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장년성가대에서 봉사를 했었습니다. 대학을 들어가면서 배우기 시작한 기타를 치면서 찬양을 인도도 하고, 소위 율동을 곁들인 찬양도 곧잘 했었습니다.(믿든지 아니 믿든지..ㅎㅎ )  

    

그러나 사실 고등학교 3학년의 어느 날까지 저는 사실 악보를 볼 줄 모르는 악맹(?)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제가 악보를 볼 줄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노래를 잘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학생 성가대가 저녁예배를 섬기는 때였습니다. 그때는 대부분 찬송가만을 부를 때인지라, 모든 찬양에서 본인이 할 수만 있으면 찬송가를 보면서 4성부의 각 파트를 할 수 있었습니다. 마침 제가 잘 아는, 언젠가 성가대에서 4부로 찬양을 해본 적이 있는 찬양을 부르는지라 좀 아는 척 하려고 한 소절을 테너 파트로 불렀습니다. 그랬더니 그 다음 절을 제 옆에 있던 친구가 테너 파트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데 아뿔싸 저는 악보와 상관없이 제 기억으로 불렀고, 그 친구는 정확하게 악보대로 소리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부른 테너 음정은 악보와 상관없는 부분이 상당히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창피하던지... 집에 돌아와 찬찬히 악보를 살펴보고 더듬더듬 계명창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제가 어디에서 음정이 틀렸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박자는 손으로 지휘를 하면서 박자를 저으며 맞추어 갔습니다. 그렇게 훈련을 하니 점점 악보를 읽는 속도가 빠르게 늘어 갔습니다. 그래서 처음 보는 악보도 첫 음이 어디인지 직관적으로 찾아내고 속으로는 계명창을 하면서 소리는 가사를 읽는 시창이 어느 정도 가능하게 되어 갔습니다. 그리고 기타를 치면서 익힌 코드는 악보의 화성과 함께 전조하거나 이조하는 기본적인 개념을 익히게 해 주었습니다.  

    

음악적 재능으로는 결코 다섯 달란트나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아닌데, 그저 한 달란트 정도 받은 사람이었는데, 그렇게 어릴 적에 익힌 음악적인 경험과 작은 노력들에 더하여 하나님은 저를 이러저런 자리에서 찬양으로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훈련을 시키시고, 결국 예배찬양의 자리를 섬길 수 있도록 세워주셨습니다. 결코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 그분의 부르심에는 실수도 후회도 없으신 하나님께서 빚으신 결과입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써주셔서 감사하고, 쓰임 받아 영광입니다.’ 이것이 예배찬양을 하면서 드릴 수밖에 없는 고백입니다.